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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자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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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업 (1970~1979) === 플라자 그룹의 기원은 1970년 12월 8일, 제3공화국 산업부가 주도한 제4차 산업계획의 한 갈래인 '민간 기반 산업 확대 계획'에서 출발한다. 당시 루이나의 항만은 마비 직전이었다. 1960년대부터 항만 노조와 노조 파괴 용역, 그리고 부두의 하역권을 쥔 조직범죄가 얽혀 싸우면서 파업과 태업, 화물 도난이 일상이 되었고, 1970년 [[검은 10년]]이 시작되자 혼란은 더 깊어졌다. 산업부는 노조에도 조직범죄에도 휘둘리지 않는 새로운 부두를 원했다. 창업자 존 루이지 아폰테는 당시 벨포르 출신의 무명 기업인이었으나, 이 계획의 민간 협력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항만물류 경험은 없었지만 정밀한 조직 관리와 노동 통제에서 두각을 보였고, '노동력의 군사화'라는 이론으로 산업부 관료들의 주목을 끌었다. 부두를 군부대처럼 운영하면 노조도, 조직범죄도 끼어들 틈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폰테는 루이나 서부 연안의 낡은 하역창고를 임시 거점으로 삼아 '아카데미아'라는 하역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이 조직은 단순한 민간 기업이 아니었다. 루이나 정부는 그에게 '비공식적 정책 실험 대상'이라는 지위를 부여했고, 이에 따라 국방부 출신 기술자, 산업기술연구소의 자동화 설계 인력, 그리고 산업안전국 소속 감시관들이 '현장자문'이라는 명목으로 파견되었다. 민간기업의 외피를 쓴 사실상의 반(半)국영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이후 아폰테는 정부의 보조금과 저금리 융자를 바탕으로 벨포르 외곽에 방치된 국유 철도부지를 매입했다. 당시 이 부지는 루이나 철도공사가 손실 정리 대상에 올려 둔 폐기 자산이었으나, 산업부는 '서부 특수경제구역'이라는 명분 아래 이 매입을 승인했고, 이 부지는 곧 플라자 터미널 제1단지로 변모하게 된다. 국가가 항만을 직접 짓지 않고 민간에 이를 위탁한 사례는 루이나 역사상 처음이었다. 아폰테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국방부 출신 토목기술자들을 핵심 팀에 넣어 항만 설계를 군기지 구조를 본떠 추진했다. 야간 조업을 전제로 한 조명 배치, 기상 악화에 대비한 철골 가설 구조, 자동 크레인 배치는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그는 터미널의 모든 운영을 12분 단위로 나눈 '분할 작업통제 체계'를 도입했고, 이는 루이나 항만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1972년에는 제1단지 3번 선석에 루이나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 부두를 열었다. 사람이 짐을 나르지 않는 부두에서는 하역 인력을 쥐고 부두에 짐을 내릴 권리를 팔던 조직범죄의 사업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플라자의 컨테이너 부두는 훗날 루이나 항만 조직범죄가 쇠퇴한 구조적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노동 통제의 이면도 있었다. 1974년 아폰테는 터미널 경비를 맡길 자회사 플라자 시큐리티 서비스를 세웠다. 검은 10년 동안 민간 경비업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때였다. 이 회사의 초기 경비원 가운데 상당수가 1971년 해산한 극우 조직 「공화국의 방패」 온건파 출신이었다는 의혹은 지금까지 플라자를 따라다닌다. 1977년 제1터미널에서 노조 결성을 요구하는 파업이 일어나자 경비원들이 파업 노동자를 강제로 해산해 30여 명이 다쳤다. 1975년 플라자 제1터미널이 완공되자 루이나 정부는 비공식적으로 아폰테에게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산업부는 당시 신설 중이던 해상물류청의 핵심 계약을 플라자에 몰아주었고, 국영기업 화물의 일정 비율을 민간 물류로 이전하는 내부 지침이 내려졌다. 아폰테는 곧 단순 하역을 넘어 선박 운영과 육상 수송으로 손을 뻗었다. 그는 루이나 산업화 2기에서 산업부와 국방부 양쪽의 청신호를 동시에 받은 유일한 민간인이었다. 1978년 군정이 들어선 뒤에도 플라자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군정은 항만과 물류를 안보 사안으로 보고 플라자를 더 가까이 두었다. 결국 1979년 6월 2일, 아폰테는 기존의 '아카데미아'를 해산하고 새로운 민간 복합기업체인 플라자 그룹의 설립을 선언했다. 창립 총회에는 산업부 고위 관료와 군정의 국가비상위원회 경제분과 위원들이 배석했으며, 플라자 그룹은 사실상 정부 승인 아래의 민간 전략기업이라는 지위를 얻었다. 이 시점부터 플라자는 '기업이되 국가의 손발이 되는 조직', 즉 반국책기업으로 기능하게 된다. 1980년대 초 플라자 그룹은 루이나 전체 항만 물동량의 31%를 처리하고 있었고, 벨포르 경제의 13%가 그룹 계열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폰테는 더 이상 단순한 창업자가 아니었다. 그는 '산업의 사령관'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1980년 10.24 시민혁명으로 군정이 무너진 뒤 의회는 1981년 군정기 특혜 계약을 조사하는 청문회를 열었으나, 플라자는 모든 계약이 정식 입찰을 거쳤다는 서류를 내놓았고 기소된 사람은 없었다.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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